1928년 브라질 시인 오스왈드 데 안드라데(Oswald de Andrade)의 ‘카니발리즘(Cannibalism)’ 선언은 브라질의 모던아트(Modern Art)가 출발하는 정신적 모티브로 작용했다. 고대 부족사회에서 행해졌던 식인풍습을 일컫는 ‘카니발리즘’을 은유화한 이 슬로건은 유럽의 문화를 집어 삼키어 브라질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자는 매우 급진적인 포스트식민주의적 문화 운동으로 번져갔다. 음악, 무용, 건축, 미술 등 브라질의 예술계는 급속도로 유럽이나 북미의 모더니즘 문화를 수용하여 브라질만의 근대 예술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브라질적인 현대 예술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열기를 가동시킨 것은 '카니발리즘'에 이은 제2의 문화운동인 ‘트로피칼리즘(Tropicalism)’이었다. 파시즘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출발한 트로피칼리즘은 다양한 인종이 혼합된 브라질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국제적인 흐름을 수용하여 브라질의 정체성을 지닌 문화를 만들어내자는 카니발리즘의 정신을 이은 차세대 문화 운동이었다. 카에타노 벨로소(Caetano Veloso), 질베토 질(Gilbeto Gil) 등의 음악가로부터 시작된 트로피칼리즘은 미술, 영화, 무용, 문학 등 브라질의 현대 예술이 더욱 브라질적인 것을 향해 질주해 나가도록 동기화 했다. 미술에서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작가 엘리오 오이티시카(Hélio Oiticica)를 필두로 리자아 클라크(Lygia Clark), 리지아 파페(Lygia Pape), 프란츠 웨이즈만(Franz Weissman), 미라 셴델(Mira Schendel) 등의 작가들이 유럽에서 수용한 콘크리티즘(Concretism)과 트로피칼리즘을 결합한 네오 콘크리티즘(Neo Concretism)을 형성 했다. 객관성, 본질, 혹은 순수 개념에 집중하는 콘크리티즘과 달리 이들의 네오 콘크리티즘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식들을 강하게 담아내며 신체와 정신의 교합 속에서 매우 주관적이고 표현적인, 그리고 유기체적인 형식을 표방했다. 이로써 트로피칼리즘은 ‘브라질적인’ 현대 미술로서 유럽이나 북미의 미술적 흐름를 수용하는 차원이 아닌 브라질적인 미술을 세계에 제시하며 유럽이나 북미 예술계의 시선이 브라질로 향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트로피칼리즘’이 브라질적인 현대 예술의 생성에 있어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면, 이미 10년 전 앞서 1951년 시작된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국제적인 흐름으로부터 브라질적인 예술의 생성과 함께 브라질의 예술을 국제화하는 기능적인 시스템으로 뒷받침 하고 있었다. 브라질의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도시인 상파울로는 1920년대부터 유럽이나 북미의 근대 예술들을 선보이며 매우 급진적인 문화 도시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베니스비엔날레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남미 최초이자 최대의 예술 행사로써 브라질이 남미 예술의 모던화와 국제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지임을 가시화 했다. 오늘날까지 브라질의 대표적인 작가군으로 제시되는 엘리오 오이티시카와 리지아 클라크, 리지아 파페 등의 네오 콘크리티즘 작가군의 형성에 있어서도 상파울로 비엔날레가 실질적인 기능을 했다. 제1회 비엔날레에서 소개되며 우수작가로 선정된 막스 빌(Max Bill)을 통해 브라질 미술계에는 콘크리티즘이 강한 붐을 일으켰고 이후 브라질만의 색채를 지닌 네오 콘크리티즘(Neo Concretism)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제2회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몬드리안의 특별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콘크리티즘의 원형을 발견한 듯, 기하학적 추상 형식에 대한 더욱 진지하고 실험적인 기반을 확보하며 트로피칼리즘의 정신 속에서 브라질만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갔다.
상파울로 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던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6회째부터 비엔날레 재단에 의해 개최되고 있다. 비엔날레 재단은 적극적인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사기업들의 지원에 힘입어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왔다.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첫 개최자 시칠리오 마타라소(Ciccillo Matarazzo)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비엔날레 전용전시관은 상파울로 최대 규모의 공원인 이비라푸에라 파크(Ibirapuera Park)에 상파울로 현대미술관과 나란히 위치해 있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건축가 오스카 니메이어(Oscar Niemeyer)가 엘리오 우초아(Hélio Uchôa)와 팀을 이루어 디자인한 비엔날레 전용 전시관은 모든 장식을 배제한 매우 절제된 모더니즘 스타일의 외관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선형 곡선의 난간들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된 매우 유기체적인 내부를 통해 브라질적인 ‘트로피칼리티’가 내재된 모더니즘 건축을 가시화 한다. 1957년 4회부터 이 건물에서 개최되어 온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지금까지 5000여 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이곳에서 선보였다. 시칠리오 마라타소 전시관은 브라질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 안에 세계적인 작품을 담아내고 있다는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또 다른 자부심을 피력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전시관이 지닌 근대문화유적이라는 문화사적 조건은 전시에 있어 상당부분 제한을 따르게 하는 난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또한 다소 화려한 내부 공간은 작품에 가시적인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상파울로 비엔날레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들에게 이 건물은 다소 장애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2012년, 베네수엘라 출신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루이스 페레즈-오라마스(Luis Pérez-Oramas)의 기획 하에 제30회 비엔날레가 개최되었고, 내년에는 찰스 에셔(Charles Echer)를 중심으로 한 큐레이터팀이 “Universe in Universe"라는 주제로 31회 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 올해는 지난 30 차례의 비엔날레를 회고하며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함께 브라질의 미술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재고하는 전시가 9월 8일부터 12월 5일까지 진행되었다. 본 전시는 <<30×BIENAL -Transformations In Brazilian Art From 1st to 30th Edition>> 이라는 제목 하에 111명 브라질 작가의 250여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1층 넓은 홀에 설치된 마르셀로 니체(Marcello Nitsche)의 거대한 노란색 튜브 조형물, Yellow Bubble은 계속해서 주입되는 공기에 크게 부풀었다 납작해지기를 반복하며, 마치 트로피칼리티가 내재된 브라질의 미술이 거대하게 성장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피력하는 듯했다. 이 거대한 조형물을 돌아 연결된 2층 전시장으로 올라서면 본격적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브라질 작가의 작품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본 전시를 기획한 파울로 베난시오 필로(Paulo Venancio Filho)큐레이터는 이 전시가 단순히 비엔날레를 회고하는 아카이브전이 아닌 브라질 미술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전시로 기능하도록 작품을 연대기순으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가장 최근의 동시대 작품들과 전세기 작품들이 뒤섞여 있지만, 브라질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네오 콘크리티즘 작가들의 작품은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로써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연륜이 곧 브라질적인 예술의 생성과 성장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케 한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기획된 전시가 아니라 20세기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브라질 작가의 작품들을 아우르고 있어, 전시 내지는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더욱이 여느 동시대 예술현장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의 동시대 예술 역시 뚜렷한 형식이나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이미 그 규정의 범주들을 넘어 다양하게 확장되어 그 안에서 ‘브라질적인 것’을 읽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란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브라질 예술의 현재성은 브라질적인 것의 생성을 향한 전 세대 작가들의 열정의 역사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브라질의 대표적인 동시대 예술가 실도 메이렐레스(Cildo Meireles)의 경우, 개념 미술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은 개념미술을 빗겨 나가는, 감각적인 신체와 정신이 결합된 그리고 매우 정치적인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트로피칼리즘’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더욱 젊은 세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그러한 ‘브라질적인’ 에너지가 내재 되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어느 자리를 가나 동시대예술현장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전 세대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 되곤 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 덕분에 현재 북미나 유럽에서의 브라질 예술에 대한 관심은 남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핫’하다.
단순히 앵무새, 모래, 천연색이 트로피칼리즘이 아니라는 엘리오 오이티시카의 비판을 상기시키며, 트로피칼리즘을 단순히 브라질의 표면적인 가시화적 이미지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트로피칼리즘은 의식이나 개념보다는 물질과 더욱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몸의 지각과 매우 가깝게 맞닿아 있다. 트로피칼리즘이 지닌 열기는 기존의 의식이나 개념을 용해시키며 실험적이고 표현적인 에너지를 극단 없이 밀고 나간다.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조형 형식을 추구한 콘크리티즘을 수용하여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몸의 지각으로 반응한 네오 콘크리티즘은 유럽이나 북미의 지성과 개념으로 향한, 다소 차가운 모더니즘을 브라질적인 ‘뜨거움’으로, ‘몸’이 지닌 전 감각과 체온 그 자체로 소화한 실로 브라질적인 것의 생성이었다. 그리고 ‘몸’으로 반응한 그 뜨거움의 에너지는 정치적, 사회적 의식과 더불어 적극적인 삶의 개입을 통해 예술의 고립을 극복해 내는 에너지이기도 했다. 군부 독재정치에 대한 반향 의식을 내재하고 있는 트로피칼리즘 정신은 단순히 예술을 위한 예술에 그치기를 거부하며 인간의 삶 속으로의 개입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여느 국가보다도 예술에 대해 국가적인 정책적 지원과 사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낸 원동력으로도 작용했을 것이다. 브라질 정부에서는 매 년 20여 명의 해외 큐레이터와 비평가들을 초대해 브라질 예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브라질 예술의 국제적인 홍보에 더욱 열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사기업들이 문화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세금을 100%환급해 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은행이나 대기업들의 예술 지원이 매우 활발하다. 다양한 전시들이 ‘매우’ 빈번하게 쏟아져 나오고 대규모 예술행사들 역시 수시로 개최되어 이러한 예술현장을 살피기 위해서는 극도의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더욱 ‘핫’해진 브라질의 예술현장 속에서 이 ‘핫’함이 과거에 비해 점점 들떠버린 표면적 에너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의 작은 속삭임들도 오고간다.
무엇보다 브라질의 은행이나 사기업들의 지원은 해외 작가들에게도 상당부분 열려 있다. 조건은 브라질적인 것을 담아내고 반드시 브라질인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뿐 아니라 외부의 더욱 다양한 시각을 통해 ‘브라질적인 것’을 지속적으로 생성시키고자 하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여하튼 브라질에 관심 있는 국내 작가들이나 큐레이터들에게 이 지원금을 위한 시도를 추천해 본다. ITAU Banko, Banko do Brazil 등의 은행에서는 매 해 지원금 신청을 받고 있다. 한 작가에게 최대 200,000불 가량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단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로 작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리적 극복보다 언어적 극복이 먼저 요구된다는 점을 일러두고 싶다.
http://communityart.co.kr/70181393202
http://communityart.co.kr/70181393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