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파레노(Phillipe Parreno),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파리, 2013.10.23 ~ 2014.01.12
관람객들이 루브르 박물관의 한 작품을 보는 데 평균 3초가 걸린다고 말하며 시작하는 필립 파레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어 작가는 그 3초라는 시간이 무엇에 의해 결정 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그의 질문은 2007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함께 기획한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Manchester International Festival)의 주요 모티브로 작용했다. 이들은 관람객이 작품을 향해 이동하지 않는 전시를 고안해 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시간성’을 토대로 한 그룹전을 기획했고, 15명의 참여 작가들에게 작품을 설치할 공간이 아닌 시간을 분배했다. “Il Tempo del Postino (Postman Time : 우체부의 시간)”라는 제목을 지닌 이 전시는 2007년 맨체스터 오페라 하우스와 2009년 바젤 극장 안의 무대 위에서 한 편의 오페라 공연과 같은 전시로 펼쳐졌다. (참고 : www.iltempodelpostino.com)
필립 파레노라는 작가의 창작영역은 영상, 조각, 퍼포먼스, 드로잉에서부터 집필,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라는 영역을 가장 중심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그에게 전시는 작품을 제시하는 매개가 아닌 개별적인 작품들을 응집하고 있는 하나의 오브제이며, 그 오브제는 그가 구상한 맥락(context) 속에서 작품이 된다. 1990년대부터 '시간성‘이라는 주요 테제를 지니고 작업해 온 필립 파레노의 전시에 관한 다양한 실험들은 전시에 관한 기존 개념들을 빗겨 나가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선보여 왔다. 공간성 위에 시간성을 덧씌운 그의 전시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템포를 통해 개별적인 작품들을 연결하고 전시를 관람 혹은 감상하는 지각 방식 자체를 조정한다. 그의 전시는 그와 협업한 작가들에서부터 생존하지 않는 전 세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포함하며 개별 작품들은 그가 구상한 맥락(context) 속에서 알레고리적 기호가 되어 전체적인 전시라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필립 파레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5년 Le Consortium in Dijon에서 진행한 "Snow Dancing" 전시에서였다. 전시에 앞서 책으로 출판된 "Snow Dancing"은 필립 파레노와 리암 길릭(Liam Gilick), 그리고 잭 웬들러(Jack Wendler)가 상상하는 새로운 파티에 대한 대화를 담고 있다. 이 책은 텍스트를 읽는 시간이 곧 파티의 체험이 되도록 구상 한 것이었다. 이 후 이 책은 Le Consortium in Dijon에서 열린 전시의 시나리오로 작용했다. 파티라는 형식을 통해 그는 전시가 한정적인 ‘시간성’을 통해 벌어지는 이벤트일 수 있음을 확인했고, 이를 모티브로 전시에 관한 다양한 실험들을 확장시켜 나갔다. 2002년 파리 현대 미술관(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의 “Alien Season" 전시에서 그는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ouschenberg)의 1951년 작품 White Paintings를 설치했다. 그리고 4분30초라는 일정한 시간 간격마다 자동장치 된 블라인드는 방 안의 모든 빛을 차단한다. 어둠 속에서 라우셴버그의 회화 작품은 그의 영상작품이 투사되는 스크린으로 변모 되어, 그의 작품을 투사하는 매개가 된다. 2012년 리암 길릭(Liam Gillick)과 협업으로 기획한 "to the Moon via the Beach" 전시 역시 비슷한 맥락에 있다. 앰피 야외 극장(Amphitheatre) 안에 쌓아둔 수 십 톤의 모래 위에 4일 마다 모래 조각가들이 변화되는 월경(月景)을 조각했고, 해가 지면 다른 22명 작가의 시리즈 영상작품을 그 모래 조각 작품 위에 투사했다. 그의 전시 속에서 개별 작품은 독립적인 오브제이면서, 그가 구상한 맥락 속에서 기존의 의미가 소멸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면서 다른 오브제들과 전체적인 패치워크를 이루게 된다.
2002년 파리 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이후 10년 만에 파리로 복귀한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의 전시는 1990년대부터 필립 파레노가 시도해 온 전시에 관한 실험들의 결정체이자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암시하고 있었다. 더욱이 팔레 드 도쿄가 내부공간을 새롭게 재정비하면서 지하공간까지 확장한 총 22,000㎡의 전 공간을 파레노에게 맡긴 과감한 선택은 물리적 재정비를 넘어서 전시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실험과 담론을 생성하기 위한 내용적 정비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새롭게 변화된 공간을 내보이는 팔레 드 도쿄의 기대에 어긋난 것인지, 그 기대에 부응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필립 파레노는 팔레 드 도쿄가 지닌 장소성을 넘어서 새로운 공간을 창안해 내고자 했다. 즉 이미 구축된 건축적 장소성을 토대로 전시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구상한 맥락 속에서 건축적 장소성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팔레 드 도쿄 전 공간을 하나의 자동장치적 로봇 공간으로 변모시키고자 했다고 밝힌다. 사운드 디자이너 니콜락스 베커(Nicolas Becker)와 세트 디자이너 란달 피콕(Randall Peacock)과의 협업으로 전시의 물리적 시스템을 구성했고, 리암 길릭(Liam Gillck), 도밍고 곤잘레스-포에르스터(Domingo Gonzalez-Foerster), 더글라스 고르돈(Douglas Gordong), 티노 세갈(Tino Sehgal) 등의 동료 작가들과 협업을 통한 작품들, 그리고 2002년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그가 기획한 존 케이지(John Cage)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작품 전시를 가져와 그가 제작한 작품들과 더불어 전시의 내용을 구성했다.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이 번 전시는 19세기 영국 시인 토마스 후드(Thomas Hood)의 시 “The Bridge of Sights"에 나오는 구절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를 제목으로 차용하고 있다. 다리 위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한 가난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이 시 속에서 ’anywhere out of the world‘는 현실의 모든 한계와 기존의 관계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죽음의 여정과 닿아 있다. 이 시를 인용한 에드가 앨런 포우(Edgar Allan Poe)를 통해 이를 접수한 보들레르도 ”Anywhere out of the World"라는 시를 내놓았다. 인생을 욕망으로 가득 찬 환자들의 병원이라 말하며 시작하는 이 시는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로부터 벗어나 다른 곳을 꿈꾸는 욕망의 문제가 자신의 영혼과 끊임없이 논쟁하는 문제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를 다시 접수한 21세기 예술가 필립 파레노에게도 ’anywhere out of the world'는 기존의 한계와 관계성을 소멸하고 제거하는 죽음과 닿아 있으며, 기존의 현실을 벗어나 다른 곳을 욕망하는 정신적 여정의 선상에 놓여 있는 듯하다.
특정한 장소성을 부정하는 ‘anywhere'를 향해 파레노는 공간성이 지닌 틀의 한계를 시간성으로 지워 나간다. 그의 시간성은 시간의 직선적 흐름이라는 기존 질서를 벗어나 그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흐름을 지니며 개별적인 작품들을 연결하고 관람 행위 자체를 조정한다. 이번 팔레 드 도쿄 전시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라슈카 곡을 연주하는 자동기계 피아노의 사운드와 조명 빛의 리듬이 전시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 빛과 어둠의 시간적 교차는 개별 작품이 지닌 불멸의 아우라를 소멸시키며 작품 하나하나가 전시 전체를 이루는 알레고리적 기호가 되게 한다. 인형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페트라슈카 곡의 흐름을 따라 죽은 자들의 기계적 환생, 그리고 사물화 된 이미지와 사운드의 향연은 전시에 들어선 산 자들의 형체마저 그림자적 이미지가 되게 하여 실재와 환영, 자연과 인공적인 것의 경계를 소멸시킨다.
1. 입구
Marquee, 2013 / La Banque d'Accueil, 2013 / Precognition, 2012
팔레 드 도쿄 출입문 천정에 설치된 마르키의 빛 세례를 통과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에 설치된 커다란 플랙시글래스 벽 안에서 내뿜는 지나치게 환한 빛은 시각을 잠시 교란시킨다. 전시 입장을 위해 티켓을 사려고 기다리는 관람객들은 그 환한 빛 속에서 실루엣만을 드러내며, 필립 파레노의 신세계로 통하는 문지방에 머물게 된다. 경계가 아닌 영역으로서의 문지방에서 관람객들은 그의 빛 메커니즘 장치에 의해 뚜렷한 형체를 잃은 그림자 이미지가 되어 있다.
안내 데스크에서는 관람객들에게 DVD를 배포한다. DVD안에는 C.H.Z(2011)과 Marilyn(2012) 두 영상작품이 들어 있는 데 이 영상작품은 한 번 보고나면 DVD에서 지워진다.
56 Flickering Lights, 2013 / Out of Focus Window, 2013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마다 설치된 깜박 거리는 LED조명들은 전체 공간 안에 총 56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조명들은 페트라슈카 악보 일부인 56개의 음표에 맞추어 깜박거린다. 전시장의 모든 창문에 부착된 불투명한 필름은 전시장 밖의 현실적 전경의 희미한 실루엣만을 투과시키고 기계에 녹음된 외부의 소리들; 빗소리, 발자국 소리들이 통로마다 노출된 파이프관 뒤에 숨겨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4대의 자동연주 피아노는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일정한 시간 간격에 맞추어 연주한다. 전 공간이 사물화 된 사운드와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3. 1층
TV Channel, 2013
통로를 지나 처음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채운 거대한 LED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영상작품이다. 1998년부터 최근까지 제작된 필립 파레노의 영상작품들이 하나의 시리즈로 연결되어 제시된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거리나 대도시의 커다란 빌딩에 놓여지는 전광판 같은 스크린은 이 전시장 안에서 역시 일정한 거리를 요구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스크린 위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스크린의 기계적 메커니즘의 세부 요소들만이 드러난다. 기계적 메커니즘에 의존하는 사물화 된 이미지와 그 앞에 모인 관람객들의 거대한 그림자 이미지가 뒤섞여 있다.
Liam Gillick, Factories in the snow, 2007
거대한 스크린을 뒤로 하고 돌아서자마자 갑자기 어두워진 넓은 공간 한 켠의 무대 위에는 자동연주 피아노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페트루슈카를 연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 내리는 반짝이는 검은 인공 눈이 피아노와 그 주변에 쌓인다. 마술사에 의해 영혼을 갖게 된 페트라슈카 인형의 사랑과 죽음. 이 작품은 2007년 필립 파레노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큐레이터와 기획한 “Il Tempo de Postiano” 전시에서 선보였던 리암 길릭의 작품이다.
Secret Bookcase Door, 2005/2013
Dominique Gonzalez-Foerster, La Bibliothèque Clandestine, 2013
A Reenactment : Margaret Roeder Gallery, 2002 - 2013
다른 방, 한쪽 벽면에 파란색 책장이 놓여져 있다. 필립 파레노가 제작한 책장(비밀 책장 문) 안에는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르스터의 책들(비밀 책장)로 채워져 있다. 이 책장은 뒷 방으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직접 책장을 밀고 들어간 작은 방에는 재스퍼 존스와 머스 커닝햄의 드로잉 작품들이 걸려 있다. 처음 이 방 안에는 재스퍼 존스의 드로잉 작품들만이 걸려 있게 된다. 그리고 매일 재스퍼 존스의 작품을 하나씩 떼어 머스 커닝햄의 두 개의 작품으로 교체한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이 방 안에는 머스 커닝햄의 작품만이 남게 된다. 이 전시는 2002년 뉴욕의 마가렛 로더(Margret Roeder) 갤러리에서 필립 파레노가 기획했던 것으로 이번에는 전시 속의 전시가 되어 전체 전시의 요소가 된다. 생전에 많은 협업을 했던 재스퍼 존스와 머스 커닝햄의 관계 속에서 필립 파레노는 창작에 있어 협업이 새로운 맥락을 발견하고 생성시키는 주요한 과정임을 시사한다.
Fade to Black, 2013
Modified Dynamic Primitives for Joining Movement Sequences, 2013
<<비밀 책장 문>> 맞은편 벽에는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의 형광 포스터들이 붙여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방안의 빛이 차단되고, 어둠 속에서만 포스터 안의 이미지들이 드러난다. 어둠이 걷히고 갑자기 환해진 공간 속에서 맞은편에 있는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2012년 제작한 Marilyn이라는 영상작품 속에 나오는 마릴린 몬로의 낙서를 대신하는 로봇 기계 장치인데, 이 전시에서는 독립적인 오브제로 작가의 낙서를 대신하는 로봇이 된다.
4. 지하1층
Danny the Street, 2013
모든 빛이 차단된 지하의 큰 공간 천정을 마르키(Marquee) 작품들이 장악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의 제목을 한 코믹북에 나오는 Danny the Street의 이야기에서 따 왔다고 한다. Danny는 초능력을 가진 길이다. 뉴욕 라파옛가 거리가 Danny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거리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선 기호들로 변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극장이나 공연장 입구 천정에 설치되어 공간을 홍보하거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쓰이는 마르키가 이 공간에서는 낯선 기호들로 변모되어 있다. 제각각 다른 형태의 마르키 작품들은 어두운 공간 곳곳에서 현란하게 깜박 거리며 페트라슈카 곡의 한 부분 “the Dance of Nannies"를 연주한다.
How Can we Know the Dancer for the Dance?, 2012
텅 빈 무대 주변을 검은 벽이 천천히 돌고 있고, 머스 커닝햄 무용단들의 춤추는 발자국 소리만이 울린다.
C.H.Z(Continously Habitable Zones), 2011
필립 파레노의 영상작품 Marilyn(2012)이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어두운 방안을 채우고 있다. 마릴린 몬로가 생전에 머물렀던 뉴욕의 왈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 호텔의 실내 구석구석을 이동하는 카메라는 마릴린 몬로의 시선을 대신하고 마릴린 몬로의 목소리를 모방하는 컴퓨터 사운드가 영상의 나레이션을 이끌어 간다. 영상 속 실내 한 켠의 책상 앞에는 로봇이 마릴린 몬로의 손을 대신해 무언가를 적어나가고 있다. 영상이 끝나고 어두운 방 안이 환해지자 스크린 뒷편과 공간 구석에 쌓인 인공눈더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릴린 몬로의 유령이 된 기계와 인공눈은 원초적 환영이 되어 싸늘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Anywhere Out of the World, 2000
필립 파레노는 피에르 위그(Pierre Hyughe)와 함께 일본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저작권을 구입해 ‘Annlee'라는 캐릭터를 두고 여러 동료 작가들과 협업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그 중 티노 세갈(Tino Seghal)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이 스크린을 통해 상영된다. 영상이 끝나자 관객 앞에 나타난 한 꼬마 아이가 자신을 Annlee라고 소개한다. 로봇 인형의 제스처를 취하며 말하는 아이는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고 이렇게 묻는다. “What do you believe, your eyes or your words?(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당신의 시각 아니면 당신의 말들?)
5. 지하 2층
Douglas Gordon+Philippe Parreno, Zidane : A 21st Century Portrait, 2006
전혀 가공하지 않은 오랜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팔레 드 도쿄의 어두운 지하 계단을 깜박이는 조명등의 안내를 받으며 내려가면, 더글라스 고르돈과 협업으로 제작한 “지단 : 21세기 초상”이라는 영상작품이 설치된 방으로 연결된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축구스타 지단(Zinedine Zidaned)의 2005년 실제 경기 속에 17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경기하는 지단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방 안 가득 설치된 17개의 스크린은 지단을 쫒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포착된 지단의 다양한 모습과 그를 응원하는 관객들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6. 전시장 밖 - in the World
필립 파레노의 실험적 시도가 마냥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시간성이라는 테제, 협업이라는 수단 등에 관해서는 전 세대 작가들의 실험적 시도가 이미 있었다. 그럼에도 파레노가 그러한 전 세대 작가들의 시도를 끌어들이는 것은 그가 상기해 내고 싶은 기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보들레르가 사물적 이미지들에 자신의 우울한 기억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사물이 지닌 기존의 의미들을 파기하며 사물적 이미지들을 알레고리적으로 재구성했던 것처럼, 파레노 역시 전 세대 작가들의 작품과 동시대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한 작품들을 알레고리적 기호로 재구성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드러낸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기존의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에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유년기의 기억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성이라는 테제 속에서 전시는 흐르는 이벤트가 되고 그 안에서 관람객들은 그 흐름을 따라 전시의 일부가 되어 전시 자체를 체험하게 된다. 유희적 체험.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술’의 존재 가치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된다. 그것은 예술이 공명성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전시의 존재 가치와 가장 맞닿아 있어 더욱 자극적이다. 그 자극은 Any exhibition, any exhibition out of the exhibition에 관한 상상이었던 듯싶다.
http://communityart.co.kr/70183372556
‘브라질적인’ 현대미술, 그리고 상파울로 비엔날레
1928년 브라질 시인 오스왈드 데 안드라데(Oswald de Andrade)의 ‘카니발리즘(Cannibalism)’ 선언은 브라질의 모던아트(Modern Art)가 출발하는 정신적 모티브로 작용했다. 고대 부족사회에서 행해졌던 식인풍습을 일컫는 ‘카니발리즘’을 은유화한 이 슬로건은 유럽의 문화를 집어 삼키어 브라질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자는 매우 급진적인 포스트식민주의적 문화 운동으로 번져갔다. 음악, 무용, 건축, 미술 등 브라질의 예술계는 급속도로 유럽이나 북미의 모더니즘 문화를 수용하여 브라질만의 근대 예술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브라질적인 현대 예술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열기를 가동시킨 것은 '카니발리즘'에 이은 제2의 문화운동인 ‘트로피칼리즘(Tropicalism)’이었다. 파시즘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출발한 트로피칼리즘은 다양한 인종이 혼합된 브라질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국제적인 흐름을 수용하여 브라질의 정체성을 지닌 문화를 만들어내자는 카니발리즘의 정신을 이은 차세대 문화 운동이었다. 카에타노 벨로소(Caetano Veloso), 질베토 질(Gilbeto Gil) 등의 음악가로부터 시작된 트로피칼리즘은 미술, 영화, 무용, 문학 등 브라질의 현대 예술이 더욱 브라질적인 것을 향해 질주해 나가도록 동기화 했다. 미술에서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작가 엘리오 오이티시카(Hélio Oiticica)를 필두로 리자아 클라크(Lygia Clark), 리지아 파페(Lygia Pape), 프란츠 웨이즈만(Franz Weissman), 미라 셴델(Mira Schendel) 등의 작가들이 유럽에서 수용한 콘크리티즘(Concretism)과 트로피칼리즘을 결합한 네오 콘크리티즘(Neo Concretism)을 형성 했다. 객관성, 본질, 혹은 순수 개념에 집중하는 콘크리티즘과 달리 이들의 네오 콘크리티즘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식들을 강하게 담아내며 신체와 정신의 교합 속에서 매우 주관적이고 표현적인, 그리고 유기체적인 형식을 표방했다. 이로써 트로피칼리즘은 ‘브라질적인’ 현대 미술로서 유럽이나 북미의 미술적 흐름를 수용하는 차원이 아닌 브라질적인 미술을 세계에 제시하며 유럽이나 북미 예술계의 시선이 브라질로 향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트로피칼리즘’이 브라질적인 현대 예술의 생성에 있어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면, 이미 10년 전 앞서 1951년 시작된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국제적인 흐름으로부터 브라질적인 예술의 생성과 함께 브라질의 예술을 국제화하는 기능적인 시스템으로 뒷받침 하고 있었다. 브라질의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도시인 상파울로는 1920년대부터 유럽이나 북미의 근대 예술들을 선보이며 매우 급진적인 문화 도시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베니스비엔날레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남미 최초이자 최대의 예술 행사로써 브라질이 남미 예술의 모던화와 국제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지임을 가시화 했다. 오늘날까지 브라질의 대표적인 작가군으로 제시되는 엘리오 오이티시카와 리지아 클라크, 리지아 파페 등의 네오 콘크리티즘 작가군의 형성에 있어서도 상파울로 비엔날레가 실질적인 기능을 했다. 제1회 비엔날레에서 소개되며 우수작가로 선정된 막스 빌(Max Bill)을 통해 브라질 미술계에는 콘크리티즘이 강한 붐을 일으켰고 이후 브라질만의 색채를 지닌 네오 콘크리티즘(Neo Concretism)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제2회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몬드리안의 특별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콘크리티즘의 원형을 발견한 듯, 기하학적 추상 형식에 대한 더욱 진지하고 실험적인 기반을 확보하며 트로피칼리즘의 정신 속에서 브라질만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갔다.
상파울로 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던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6회째부터 비엔날레 재단에 의해 개최되고 있다. 비엔날레 재단은 적극적인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사기업들의 지원에 힘입어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왔다.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첫 개최자 시칠리오 마타라소(Ciccillo Matarazzo)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비엔날레 전용전시관은 상파울로 최대 규모의 공원인 이비라푸에라 파크(Ibirapuera Park)에 상파울로 현대미술관과 나란히 위치해 있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건축가 오스카 니메이어(Oscar Niemeyer)가 엘리오 우초아(Hélio Uchôa)와 팀을 이루어 디자인한 비엔날레 전용 전시관은 모든 장식을 배제한 매우 절제된 모더니즘 스타일의 외관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선형 곡선의 난간들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된 매우 유기체적인 내부를 통해 브라질적인 ‘트로피칼리티’가 내재된 모더니즘 건축을 가시화 한다. 1957년 4회부터 이 건물에서 개최되어 온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지금까지 5000여 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이곳에서 선보였다. 시칠리오 마라타소 전시관은 브라질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 안에 세계적인 작품을 담아내고 있다는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또 다른 자부심을 피력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전시관이 지닌 근대문화유적이라는 문화사적 조건은 전시에 있어 상당부분 제한을 따르게 하는 난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또한 다소 화려한 내부 공간은 작품에 가시적인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상파울로 비엔날레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들에게 이 건물은 다소 장애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2012년, 베네수엘라 출신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루이스 페레즈-오라마스(Luis Pérez-Oramas)의 기획 하에 제30회 비엔날레가 개최되었고, 내년에는 찰스 에셔(Charles Echer)를 중심으로 한 큐레이터팀이 “Universe in Universe"라는 주제로 31회 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 올해는 지난 30 차례의 비엔날레를 회고하며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함께 브라질의 미술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재고하는 전시가 9월 8일부터 12월 5일까지 진행되었다. 본 전시는 <<30×BIENAL -Transformations In Brazilian Art From 1st to 30th Edition>> 이라는 제목 하에 111명 브라질 작가의 250여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1층 넓은 홀에 설치된 마르셀로 니체(Marcello Nitsche)의 거대한 노란색 튜브 조형물, Yellow Bubble은 계속해서 주입되는 공기에 크게 부풀었다 납작해지기를 반복하며, 마치 트로피칼리티가 내재된 브라질의 미술이 거대하게 성장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피력하는 듯했다. 이 거대한 조형물을 돌아 연결된 2층 전시장으로 올라서면 본격적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브라질 작가의 작품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본 전시를 기획한 파울로 베난시오 필로(Paulo Venancio Filho)큐레이터는 이 전시가 단순히 비엔날레를 회고하는 아카이브전이 아닌 브라질 미술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전시로 기능하도록 작품을 연대기순으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가장 최근의 동시대 작품들과 전세기 작품들이 뒤섞여 있지만, 브라질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네오 콘크리티즘 작가들의 작품은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로써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연륜이 곧 브라질적인 예술의 생성과 성장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케 한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기획된 전시가 아니라 20세기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브라질 작가의 작품들을 아우르고 있어, 전시 내지는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더욱이 여느 동시대 예술현장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의 동시대 예술 역시 뚜렷한 형식이나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이미 그 규정의 범주들을 넘어 다양하게 확장되어 그 안에서 ‘브라질적인 것’을 읽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란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브라질 예술의 현재성은 브라질적인 것의 생성을 향한 전 세대 작가들의 열정의 역사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브라질의 대표적인 동시대 예술가 실도 메이렐레스(Cildo Meireles)의 경우, 개념 미술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은 개념미술을 빗겨 나가는, 감각적인 신체와 정신이 결합된 그리고 매우 정치적인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트로피칼리즘’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더욱 젊은 세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그러한 ‘브라질적인’ 에너지가 내재 되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어느 자리를 가나 동시대예술현장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전 세대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 되곤 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 덕분에 현재 북미나 유럽에서의 브라질 예술에 대한 관심은 남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핫’하다.
단순히 앵무새, 모래, 천연색이 트로피칼리즘이 아니라는 엘리오 오이티시카의 비판을 상기시키며, 트로피칼리즘을 단순히 브라질의 표면적인 가시화적 이미지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트로피칼리즘은 의식이나 개념보다는 물질과 더욱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몸의 지각과 매우 가깝게 맞닿아 있다. 트로피칼리즘이 지닌 열기는 기존의 의식이나 개념을 용해시키며 실험적이고 표현적인 에너지를 극단 없이 밀고 나간다.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조형 형식을 추구한 콘크리티즘을 수용하여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몸의 지각으로 반응한 네오 콘크리티즘은 유럽이나 북미의 지성과 개념으로 향한, 다소 차가운 모더니즘을 브라질적인 ‘뜨거움’으로, ‘몸’이 지닌 전 감각과 체온 그 자체로 소화한 실로 브라질적인 것의 생성이었다. 그리고 ‘몸’으로 반응한 그 뜨거움의 에너지는 정치적, 사회적 의식과 더불어 적극적인 삶의 개입을 통해 예술의 고립을 극복해 내는 에너지이기도 했다. 군부 독재정치에 대한 반향 의식을 내재하고 있는 트로피칼리즘 정신은 단순히 예술을 위한 예술에 그치기를 거부하며 인간의 삶 속으로의 개입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여느 국가보다도 예술에 대해 국가적인 정책적 지원과 사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낸 원동력으로도 작용했을 것이다. 브라질 정부에서는 매 년 20여 명의 해외 큐레이터와 비평가들을 초대해 브라질 예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브라질 예술의 국제적인 홍보에 더욱 열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사기업들이 문화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세금을 100%환급해 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은행이나 대기업들의 예술 지원이 매우 활발하다. 다양한 전시들이 ‘매우’ 빈번하게 쏟아져 나오고 대규모 예술행사들 역시 수시로 개최되어 이러한 예술현장을 살피기 위해서는 극도의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더욱 ‘핫’해진 브라질의 예술현장 속에서 이 ‘핫’함이 과거에 비해 점점 들떠버린 표면적 에너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의 작은 속삭임들도 오고간다.
무엇보다 브라질의 은행이나 사기업들의 지원은 해외 작가들에게도 상당부분 열려 있다. 조건은 브라질적인 것을 담아내고 반드시 브라질인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뿐 아니라 외부의 더욱 다양한 시각을 통해 ‘브라질적인 것’을 지속적으로 생성시키고자 하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여하튼 브라질에 관심 있는 국내 작가들이나 큐레이터들에게 이 지원금을 위한 시도를 추천해 본다. ITAU Banko, Banko do Brazil 등의 은행에서는 매 해 지원금 신청을 받고 있다. 한 작가에게 최대 200,000불 가량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단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로 작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리적 극복보다 언어적 극복이 먼저 요구된다는 점을 일러두고 싶다.
http://communityart.co.kr/70181393202
http://communityart.co.kr/70181393533